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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라도 보였으면"…5·18 당시 숨진 고교생 안종필씨 사연 '눈물'
꿈에라도 보였으면"…5·18 당시 숨진 고교생 안종필씨 사연 '눈물'
  • 전효정 기자
  • 승인 2019.05.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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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정임씨 "남편과 아들 제사 한날 치러…그날 붙잡았다면"

"종철아 꿈에 보였으면 좋겠다. 잘 있어 엄마 또 올게."

5·18민주화운동당시 숨진 고(故) 안종필씨의 사연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기념식에서 안종필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안씨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17살의 나이에 전남도청에서 최후까지 항전을 하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안씨는 고교생이었음에도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며 나가 시민군들을 도왔고, 어머니인 이정임씨는 그런 아들을 말렸다.

하지만 1980년5월25일 새벽 안씨는 또다시 거리로 나갔고, 결국 그것이 이씨가 살아있는 안씨를 본 마지막이 됐다.

이씨는 이날 기념식 공연 인터뷰에서 "종필이 아버지 제사가 26일 저녁인데 종필이가 27일 새벽에 죽었으니 제사를 한 날에 치르고 있다"며 "그 심정을 어떻게 말하겠느냐. 죽지를 못하니 살고 있지"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어 "내가 안아팠으면 종필이 너를 그날 잡았을 것인데 그날 하루 저녁 못잡아가지고"라며 "하루도 너를 잊은 날이 없고, 엄마는 날마다 너를 생각하고 있다. 꿈에 보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종필아 잘있어. 엄마 갈랑께, 또올께"라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안씨의 조카인 안혜진씨도 5·18기념식에서 글을 낭독하면서 "저보다 훨씬 어렸던 열 일곱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삼촌이 도청에서 숨졌을 때 큰 형이었던 제 아버지는 할머니 대신 그 모질고 힘든 상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생 시신을 확인해야 했고, 쫓기다시피 삼촌을 망월동에 묻어야 했으며, 차마 막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아파서 할머니에게 시신조차 보여드리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안씨는 "그일을 두고 아버지는 평생 아파하셨다"며 "제 아버지도 그 때는 제 나이였을 청년이었을텐데 말입니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처럼 광주의 일년은 5월부터 시작해서 5월로 끝난다고 이야기 한다"며 "일년 내내 5·18을 이야기 하고, 일년 내내 5·18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에서 5·18은 애증이고 아픔이고, 기억 그 자체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저희 할머니는 막내아들인 삼촌의 기억도 점차 잃어가신다"며 "가슴에는 아직도 그날이 한으로 남아서 인지 눈물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아픈기억이라고 잊기 보다는 그 기억을 다잡아 제 가슴에 간직하려고 한다"며 "삼촌을 기억하고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그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오월 그날 청년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 할머리를 위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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