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조작"vs"기존입장 고수"…'국과수 감정결과' 놓고 검·경 또 충돌
수원지검 23일 브리핑서 "제3의 인물 시료로 사용" 확신 경찰 "당시 현장서 발견된 체모"…檢 브리핑 4시간 후 반박
2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 검사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결정 여부 의견 제출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굿 뉴스통신
검찰이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 대해 재심개시가 상당하다는 의견을 밝힌 배경에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가 명백한 조작이었다는 확신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 검사는 23일 오후 본청에서 열린 '재심청구인 윤모씨의 재심청구 사건 검찰의견 제출' 브리핑에서 "1989년 7월 국과수가 화성경찰서로 보낸 감정서에 윤씨의 체모로 사용된 분석값이 아닌 제3의 인물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1989년 7월24일 당시 국과수는 화성경찰서에 감정서를 보내며 "방사성 동위원소 10개 핵종의 각 함량들이 40% 편차 이내에서 일치하므로 증1호와 증2호는 유사한 음모"라며 감정결과를 알렸다.
하지만 이날 검찰은 증1호는 '스탠다드 시료', 증2호는 '제3의 인물'의 것으로 사용돼 윤씨와 전혀 상관없는 결과물임에도 결국 윤씨가 범인으로 몰렸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검찰이 밝히는 스탠다드(Standard) 시료란 증거물에 대한 정식 분석에 앞서, 해당 기계가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사용되는 '표준시료'를 뜻한다.
표준시료는 파우더로 돼 있으며 표준시료에 따른 결과값이 미리 정해져 있다.
때문에 표준시료를 넣고 기계를 돌리고 난 후, 미리 정해져 있는 결과값으로 기계가 도출하면 이는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의미고 그 반대로 결과값에 큰 편차가 있다면 해당 기계는 사용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증 1 호 증 2 호 Sample C
Ti 13.7 11 14
I 0.35 0.48 0.7
Br 0.71 0.33 0.17
Mg 198 207 266
Cu 16.5 32 41
Cl 170 120 506
Al 190 211 114
Ca 307 470 726
S (%) 3.85% 4.32% 4.22
Mn 8.8 12.8 29
Na 29 8.7 1.7
Zn 179 248 353
방사성 동위원소 기법을 통한 윤씨의 실제 분석값은 'Sample C'다.
이진동 2차장 검사는 "전담조사팀은 최근 원자력연구소로부터 1989년 7월21일에 분석완료한 윤씨의 대한 실제 분석 결과값을 확보했다"며 "당시 국과수는 이 결과를 사용하지 않고 제3자의 인물의 것을 사용, 감정서에 게재하고 경찰에 제공했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기록물은 국과수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물품에 대한 감정의뢰가 접수되면 '분석기관'으로써 원자력연구소가, '감정기관'으로써 국과수가 각각 책임지면서 이외 벗어나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의 부연설명이다.
결국 검찰의 주장대로 1989년 7월24일자 '조작된 감정결과'로 윤씨는 범인으로 검거돼 수원지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당시 사건을 넘겨 받은 수원지검 소속 전직 검사 최모씨는 "국과수 감정결과가 일치한게 왔다고 해서 기록은 보긴 봤는데 알지 못했다"며 "그리고 윤씨도 자백하고 하니 그대로 기소했다"는 취지로 당시 국과수 감정서에 대한 의견을 이같이 밝혔다.
현재 최씨는 당시 윤씨의 임의동행부터 구속영장 발부 전까지, 아무런 법적 근거나 절차 없이 75시간 동안 감금한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관건은 '국과수 감정결과 조작'에 당시 경찰이 개입됐는지, 왜 엉뚱한 자료를 가져와 윤씨를 범인으로 몰게 했는지 주요 대목에서 검찰은 결정적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단 점이다.
이진동 2차장 검사는 "당시 감정인이었던 장모씨가 현재 뇌경색을 앓고 있어 거동도 불편한데다 대답하는 것 조차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장씨를 통해 여러가지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다음 조사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윤씨를 상대로 불법구금, 잠 안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던 당시 수사관들이 감정결과 조작에 개입이 됐는지 여부를 파악하려고 했으나 핵심 인물들 중 이미 사망하거나 현재 이민 간 후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강제수사가 불가한데다 출석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진실규명을 위해서라도 향후 재심이 열리게 되면 법원의 구인명령으로 반드시 법정에 출석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과수 감정결과를 두고 검·경은 이날도 충돌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날 검찰의 브리핑이 있은 직후, 4시간 여만에 검찰의 국과수 감정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원자력연구원에서 시료분석을 담당했고 현재도 근무 중인 A박사에 따르면 스탠다드 시료는 검찰에서 밝히는 표준시료가 아닌,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가 맞다"며 "이를 국과수가 조합·첨삭·가공·배제해 감정상의 중요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며 일관된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만약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제3의 인물로 사용됐다는 그 음모 주인을 검거해 재감정을 의뢰하고 조사하면 될 문제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양(당시 13세)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이때 사건현장에서 체모 8점이 발견됐고,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조사를 벌였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가 20년형으로 감형돼 2009년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총 10차례 연쇄살인사건 피의자인 이춘재가 그동안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히면서 윤씨는 지난달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수원지법은 이춘재 8차 사건이 일어나던 이듬해인 1989년 10월 윤씨에게 살인, 강간치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날 오전 수원지법에 본 재심청구권에 대해 형사소송법 제 420조 규정의 재심사유가 인정돼 '재심을 개시함이 상당하다'는 취지로 의견을 제출했다.